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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잘 나의엔진은 식지 않았다.

제목: 그 시절, 나의 엔진은 식지 않았다

프롤로그:
내나이 마흔다섯.
이제는 눈가에 짙게 자리 잡은 주름을 만지며 거울을 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 나 원동기 면허 시험 보면 안 돼?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 살이 된 아들이 저녁 밥상머리에서 슬며시 던진 한마디에 집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아내의 눈총이 나를 향했고,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절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 오토바이 핸들에 손도 대지 마라."
내 입에서 나온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 아들은 입을 툭 내밀며 "아빠는 꼰대야" 하고 제 방으로 쾅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어두워진 거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 너머로, 문득 1999년의 뜨거웠던 그해 여름방학이 환영처럼 겹쳐졌다.
'나는 탓고, 자식은 안 된다니. 참 지독한 모순이구나.'
씁쓸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호기롭던 열여덟의 피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그 뜨거움 뒤에 얼마나 위태로운 벼랑 끝이 숨어 있었는지.
시간을 소환하는 태엽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999년, 낭만과 무모함이 공존하던 그 시절로.

1장: 1999년 여름, 60점짜리 영웅들

1999년 7월. 매미 소리가 귀전을 찢을 듯 울려 대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생일이 지나 마침내 만 16세가 된 나에게는 오직 한 가지 목표뿐이었다. 원동기 장치 자전거 운전면허증. 그것은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었다. 시골 구석에 갇힌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날개'였다.
나는 아침 일찍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군청 소재지에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접수창구에서 원서를 내밀 때의 그 떨림이란.
시험 당일, 경찰서 강당에 모인 인원은 대략 50명 남짓이었다. 그 풍경은 참으로 기묘했다.
곰방대를 물었을 법한 쭈글쭈글한 시골 할아버지, 밭일을 하다 오신 듯 장화 차림의 아줌마, 기름때 묻은 작업복의 아저씨, 껄렁거리는 동네 총각, 뽀얀 얼굴의 아가씨, 그리고 나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학생들까지.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자자, 조용히 하고! 시험지 나눠준다.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경찰관 아저씨의 고함과 함께 시험지가 돌았다. 문제는 전부 O, X 유형. 교통법규의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다.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동네 어르신들이 시험지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자, 감독관인 경찰관 아저씨가 다가가 슬그머니 정답을 찍어주는 것이 아닌가.
"어르신, 1번은 O 같지요? 그렇지, O에 써요. 2번은 X지?"
심지어 시험이 끝난 사람들은 옆 사람과 시험지를 서로 맞대어 보며 채점을 고쳐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격해야 할 국가 자격시험이 한 편의 시골 잔치 같았다.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한글도 모른 채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사고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에서 '거저 면허증을 주려고' 판을 깔아준 것이 틀림없었다.
곧이어 채점이 시작되었다. 50명 중 합격자는 무려 48명.
단 2명만 탈락이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느님, 부처님, 제발요...'
나는 손가락을 마디마디 꼬며 간절히 기도했다. 심장이 쿵쾅거려 갈비뼈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때 경찰관 아저씨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에휴, 떨어진 2명은 대체 뭐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등학생들이 떨어졌네!"
순간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진 발표에 나는 헉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농고 다니는 태식, 태호! 너희 둘 탈락이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었다. 내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농고 학생 2명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황급히 가방을 챙겨 강당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어른들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그, 머리가 얼마나 돌대가리면 고등학생이 O, X 문제 60점도 못 맞냐, 쯧쯧!"
강당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2장: 청테이프 코스와 세상을 얻은 기분

"자, 필기 합격자들 전부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장 앞으로 모여! 이제 실기다!"
경찰관 아저씨의 말에 사람들이 우르르 이동했다. 그런데 시험장 앞에 서자 경찰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실기 시험 볼 오토바이가 없네? 오늘 오토바이 타고 온 사람 손 들어 봐. 오늘은 봐줄 테니까."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무면허 운전으로 걸릴까 봐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경찰관 아저씨는 헛웃음을 지으며 살벌한 '협박'을 건넸다.
"어라? 손 안 들어? 지금 안 나오면, 오늘 시험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길목에 진치고 서서 싹 다 잡는다? 솔직히 손 들면 오토바이만 시험용으로 좀 쓰고 깔끔하게 넘어가 준다니까!"
경찰관의 정색에 결국 서너 명이 찔끔하며 손을 들었다. 그렇게 확보된 오토바이는 스쿠터 한 대와 시골의 명물 CT100(대림 혼다 오토바이) 한 대.
아스팔트 바닥에는 Z코스, S코스가 그려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도로 중간에 파란색 청테이프를 길게 붙여 대충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실기 시험은 그야말로 '형식' 그 자체였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몰았다. 가다가 균형을 잃고 발을 땅에 쿵쿵 찍는 사람, 청테이프 표시선을 대놓고 밟고 가는 사람, 심지어 코스를 벗어나 양발로 땅을 짚으며 오토바이를 뒤로 끌고 후진하는 아저씨까지 있었다.
결과는? 전원 합격.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손에 쥐어진 매끄러운 플라스틱 카드. [원동기 장치 자전거 운전면허증].
내 사진과 경찰서장의 인감이 선명하게 찍힌 그 조그만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 열여덟 살의 나는 정말로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뜨거운 것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나는 아이가 아니었다. 국가가 인정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운전자'였다.
그날 이후, 나는 남은 방학 내내 개학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훈장을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3장: 아버지의 허락, 그리고 영웅의 출격

그러나 진짜 넘어야 할 산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 저 면허증 땄어요! 개학하면 오토바이 타고 학교 다녀도 돼요?"
방학 내내 나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졸라댔다.
아버지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안 된다. 오토바이가 얼마나 위험한 건데 고등학생이 오토바이를 타? 절대 안 돼."
하지만 나에게는 명백하고도 명확한 명분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시골 중에서도 지독한 오지였다.
"아버지, 학교까지 걸어가면 1시간 30분이에요. 버스 타려면 큰길 정류장까지 또 30분을 걸어나가야 하고요. 게다가 우리 동네 버스는 2시간에 한 대씩 오잖아요! 버스 한 대 놓치면 무조건 지각이에요. 조심해서 타고, 헬멧도 꼭 쓰고 다니겠습니다. 네? 아버지!"
몇 날 며칠을 질기게 설득하고, 절대로 속도를 내지 않겠다고 수십 번을 맹세한 끝에,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허락하셨다.
"허허... 조심해서 타라. 헬멧 꼭 쓰고. 알았냐?"
마침내 개학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정성스럽게 다림질한 교복을 입고, 등가방을 멘 뒤, 헬멧을 깊게 눌러썼다. 그리고 마당 한구석에 서 있던 오토바이에 올랐다.
키킥, 콰쾅! 붕- 붕-!
시동을 걸자 묵직한 진동이 엉덩이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당당하게 마당을 빠져나와 도로로 들어섰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1시간 반 동안 땀을 흘리며 걸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자유의 신이 된 기분으로 신나게 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학교를 불과 몇 킬로미터 남겨두지 않은 도로 위에서 사건이 터졌다.
빵-! 빵빵-!
뒤에서 승용차 한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울려댔다. 하이빔(상향등)까지 번쩍거리며 내 뒤통수를 위협했다.
'어라? 어떤 미친놈이 오토바이한테 위협운전을 하고 난리야?'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으며 오토바이 속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승용차는 엄청난 속도로 내 오토바이를 추월하더니, 내 바로 앞에 차를 비스듬히 대며 길을 막아섰다.
"아이 씨, 뭐야!"
나는 툴툴거리며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승용차 문이 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거칠게 걸어 나오는 사람의 형체.
그 순간, 나는 턱 숨이 막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내 담임 선생님이었다.

4장: 벼락과 귀싸대기

선생님의 얼굴은 악귀처럼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제발로 도망치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나에게는 '무적의 부적'이 있었으니까.
나는 헬멧을 쓴 채로 당당하게 오토바이 위에 앉아 선생님께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목소리와 체구만으로 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너... 너 '파르파파' 맞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분노로 부덜부덜 떨리고 있었다.
"너 지금 당장 오토바이 치우고, 학교 오자마자 교무실로 따라와!"
선생님은 차를 타고 훠엉 가버리셨다.
나는 오토바이에 다시 시동을 걸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생님이 왜 저렇게 화가 났지? 오늘 아침에 사모님이랑 싸우고 나오셨나? 왜 애먼 나한테 화풀이야?'
철없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학교 근처 공터에 오토바이를 끌고 가서 몰래 세워두었다. 그리고 아주 당당한 걸음걸이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무실 안은 적막했다. 담임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고함을 지르셨다.
"야 이 놈아! 고등학생 새끼가 어디서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해?!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선생님의 일성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찌그러진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반짝이는 원동기 운전면허증을 빼내어 선생님 눈앞에 딱 내밀었다.
"선생님, 저 면허증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타고 다니라고 허락해서 면허증을 줬는데, 선생님이 왜 못 타게 하십니까?"
나의 그 논리정연하다고 믿었던, 그러나 스승의 염장을 지르는 버르장머리 없는 한마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세상이 멈추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더니, 손목에 차고 있던 가죽 시계를 툭 풀어 집어던지셨다.
그리고 나를 향해 짓쳐 들어왔다.
'아... 하면 안 되는 말을 했구나.'
느낌이 온 순간은 이미 늦어 있었다.
빠빡-! 빠아빡-!
눈 깜짝할 사이에 양쪽 귀싸대기가 번갈아 터져 나갔다. 눈앞에서 노란 불꽃이 튀었다.
타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슴팍에 발차기가 날아오고, 배와 머리로 묵직한 주먹이 꽂혔다. 온몸의 뼈가 마디마디 아파왔다. 교무실 바닥을 구르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김 선생! 참아! 애 잡겠어! 그만해!"
옆 자리에 있던 다른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달려들어 담임 선생님을 겨우 떼어놓고서야 폭풍이 그쳤다.
나는 교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시멘트 바닥 위로 내 코에서 떨어진 피가 뚝, 뚝- 소리를 내며 붉은 반점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담임 선생님이, 피투성이가 된 나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 내 제일 아끼던 제자가 오토바이 타고 다니다가 사고로 죽었다."
선생님의 눈에 순간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서... 내 제자가 피 흘리며 죽는 걸 봤다고. 근데 네가... 네가 오토바이를 타?"
교무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제자가 오토바이를 타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는 강한 경고를 남기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도 철렁했다.
하지만 열여덟의 나는 여전히 철이 없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 선생님 제자는 무면허로 타다 죽었겠지. 나는 국가가 인정한 면허증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타면 괜찮아.'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교실로 올라가라. 그리고... 다시는 내 눈에 네가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모습 안 띄게 해라. 알겠냐?"

5장: 피투성이 영웅, 그리고 훈장

어기적거리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교실 안에 있던 반 친구들의 눈이 쟁반만 해졌다.
"야! '파르파파'! 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3학년 선배들한테 맞았냐? 아니면 1학년 애들이랑 패싸움했냐?"
얼굴은 피투성이에 퉁퉁 부어오르고, 교복에는 흙먼지와 핏자국이 자자한 나를 보며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나를 부축했다.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아, 주머니 속에서 주핏주핏 면허증을 다시 꺼내 탁자에 내던졌다. 그리고 코피를 쓱 닦아내며 씨익 웃었다.
"마, 나 오늘 오토바이 타고 등교하다가 담임한테 걸렸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일, 담임 차를 비켜주지 않다가 교무실에서 맞짱(?)을 뜬 이야기를 당당하게 부풀려 자랑했다.
그 순간, 나는 교실의 '영웅'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하고, 면허증을 내밀며 선생님에게 대들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경악하는 놈, 부러워하는 놈, 배 아파하는 놈, 진짜 멋있다고 엄지를 세우는 놈... 친구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온몸의 통증도 잊은 채 영웅주의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선생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담임 선생님도 공터에 세워둔 내 오토바이를 보셨겠지만, 이미 매를 맞고도 굴하지 않는 나를 보며 혀를 차셨을 뿐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거의 포기하신 셈이었다.
가끔 교복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도로를 달리면, 경찰 아저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나를 세우곤 했다.
"학생! 오토바이 내려봐. 무면허지?"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갑에서 면허증을 쏙 빼내어 삐딱한 자세로 내밀었다.
"자요! 됐어요?"
경찰관 아저씨는 내 면허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고는, "에휴... 안전모 잘 쓰고 조심해서 타라" 하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발행한 면허증 앞에서는 경찰관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란.

에필로그:

모순의 세월을 지나
세월이 흘렀다.
문득 거실 소파에 앉아 그때를 되짚어본다.
'만약 그때,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면허증을 당당하게 내미는 대신... 면허증을 부끄럽게 살짝 내밀면서 "선생님, 면허증은 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타겠습니다" 하고 납작 엎드렸다면 어땠을까?'
아마 먼지가 나도록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선생님은 나의 그 뻔뻔하고 당돌한 '면허증' 타령에 더욱 피가 거꾸로 솟으셨던 것이리라.
지금 내 나이 마흔다섯.
1999년의 나와 똑같은 열여덟 살이 된 아들을 본다.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들의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만약 내 아들이 내일 당장 원동기 면허증을 따와서 "나 면허증 있으니까 오토바이 사줘"라고 한다면?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몽둥이를 들어서라도 막을 것이다. 도로 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 조그만 오토바이 바퀴 두 개에 얼마나 무거운 목숨이 걸려 있는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시절, 시골길을 달리는 나를 보며 속을 끓이셨을 나의 아버지.
그리고 제자를 잃은 슬픔에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때려서라도 막고 싶어 했던 담임 선생님.
그분들의 마음이 27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는 되고, 내 자식은 안 된다니...'
참 지독한 모순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이 모순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마흔다섯의 나는 오늘 밤, 거칠게 시동을 걸며 1999년의 신작로를 내달리던 철없는 열여덟의 나에게, 그리고 이제 막 그 시절의 문턱에 선 내 아들에게 나지막이 혼잣말을 건네본다.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도 어쩔 수 없는 아빠인가 보다."